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고.
조선인은 한때 이웃 나라 국민보다 훨씬 앞섰다고 적시했다.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.
17세기 철화·동화백자는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연이어 겪은 후 청화 안료를 구하기 힘들어졌을 때 나타난 것이다.그는 조선 도자기 역사도 제법 알고 있었다.주자학 근본주의를 따르면서.
[사진 한국도예협회] 그 여파는 오스트리아 여행작가 헤세-바르텍(1854~1918)의 기록에도 나타난다.그래도 그는 조선인은 훌륭한 본성 때문에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.
이번에 달항아리 못지않게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법한 청화철화백자도 한 점 나왔다(사진 2).
게다가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.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.
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현대미술가 작품 같네.이번에 달항아리 못지않게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법한 청화철화백자도 한 점 나왔다(사진 2).
청화백자 자체가 푸른색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취향에 맞춰 수출용으로 개발한 것이었다.조선 도공들은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지니고도 익명의 존재로 머물렀다.